과학계도 마찬가지지만 도서관계도 지금 새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 때문에 마음이 편치않습니다. 지난해에 발족한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1년도 못채우고 '실효성 부재'라는 이유로 폐지가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는 우리나라가 도서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었는데 이제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갈 안타까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리고자 한국도서관협회 명예회장(신기남 의원)이 동료 국회의원에게 보낸 편지를 여기 첨부합니다.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는 존속되어야 합니다
국회의원 신기남
의원님들께서도 각자 이번 17대 국회를 두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평가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크게 두가지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 16대부터 노력해온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든 것이었고, 또 하나는 대통령산하에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것’은 우리민족의 정수인 한글을 바로 세우는 일이며 10년이 넘는 한글학계와 한글단체의 소망이었고,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의 탄생’은 문화와 정보의 중심인 도서관의 발전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도서관계의 60년 묵은 숙원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17대 국회가 이러한 수십년에 걸친 숙원을 해결했다는데 그 일원으로서 자랑스럽기도 하고, 당리당략을 넘어 국가를 위해 법안을 통과시켜준 여야의 모든 선배 동료의원님들께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새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 발표를 보고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위원회’를 정비한다는 이유로 17대 국회의 큰 성과인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를 폐지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많은 위원회가 무분별하게 난립하고 있기에 조정하고 정비하는 것에 어느 누가 반대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일에는 ‘옥석을 가릴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하고,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도서관 정책은 문화부, 교육부, 행자부 등 10여개 부처에 분산되어 정책조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체계적인 정책의 수립은 물론이고 관련부처간의 협력이 어려워 우리 도서관의 발전은 더딜 수 밖에 없었으며, 결국 선진국의 도서관을 보며 마냥 부러워하는 게 그동안의 전부였습니다.
그러했기에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산하에 기구를 두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조정과 집행을 하도록 해야한다는 지적이 누누이 있었습니다. 결국 기나긴 논의를 거치고 여야간의 합의에 의해 2006년 10월 ‘도서관법’을 개정했고, 지난해 6월에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대통령 산하에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야 우리는 여기저기 흩어져 효율성이 떨어지던 도서관정책을 서로 조율할 수 있게 되었고, 국가차원의 일관성 있고 종합적인 도서관정책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도서관정책의 추진에 있어서 효율성을 높인 것으로서 새정부가 강조하는 ‘효율성’에 비추어봐도 올바른 방향이며, 오히려 필요한 위원회입니다.
아시다시피 도서관은 지식기반사회의 핵심적인 정보문화센터로서 기능을 담보해야 합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많은 선진국들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도서관과 장서들을 갖추고 있으며, 계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도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시골의 작은 공공도서관’이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1997년 ‘도서관재단’을 만들어 도서관에만 수억달러를 기부하고 있으며, ‘강철왕’ 카네기도 1890년과 1917년 사이에 4천만달러, 현재 가치로 따지자면 5억달러가 넘는 큰돈을 도서관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도서관에 대한 투자는 미국이나 기업뿐만 아닙니다. 교육경쟁력과 국가경쟁력에서 1위를 하는 핀란드는 다른 무엇보다 ‘도서관 강국’입니다. 지난 2002년 방한한 리포넨 총리는 ‘공공도서관 사용인구 비율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할 정도이며, 도서관이나 장서의 수도 우리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월등히 높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도서관을 통한 독서교육을 위해 아예 하루씩 도서관에서 묵게 하는 프로그램도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같은 선진국의 예는 수없이 많으며, 이는 도서관이야말로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일 가장 좋은 투자처이며, 창조적 지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최상의 동력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공공도서관의 수는 OECD국가 중 최하위이며, 도서관 관련 예산도 2004년기준 134억원으로 미국에서 한 대학이 사용하는 연간 도서 구입비보다 적을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의 열악한 도서관 수준에 대해 더이상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의 탄생’은 정말로 가뭄에 내리는 단비로 여겨질 만큼 도서관 발전의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많은 도서관인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제야말로 선진국형 도서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기뻐했습니다. 이는 미국이 1970년 대통령직속 상설기관으로 설치된 ‘국가문헌정보학위원회(NCLIS)’를 통해 국가차원의 도서관발전을 이끌었고, 영국이 ‘도서관정책위원회’로 각급정부기관의 도서관 관련 사항을 권고하고 자문하며, 다양한 도서관정보시스템을 조정하는 사례를 본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탄생한 후, 외국의 학계나 도서관계도 이를 매우 고무적으로 평가했으며 부러워할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것을 지금 우리는 걷어차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탄생한지 겨우 7개월여 만에 그 싹을 밟아버리려 하는 것입니다.
물론,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도서관발전의 전부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도서관 현실을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키는데 효과적이며 필요한 조직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이 창의적 지식인이 필요한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최근 급격한 성장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중국도 이미 도서관에 집중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2006년까지 도시 지역뿐만 아니라 농촌지역까지 도서관 확충을 전개해 지금까지 6만 6천관, 장서수로 220만권에 이르렀다고 하며, 중국정부의 한 간부는 2007년에는 도시지역에 6천관 농촌지역에 3만에서 5만관을 설치해 2010년까지 농촌지역에 20만개의 도서관을 설치할 계획이라발표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중국의 ‘미래에 대한 투자’ 소식은 우리를 더욱 긴장하게 하고, 기존의 ‘도서관위원회’까지 없애는 우리의 현실이 가슴 아프고 답답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위원회가 난무했다고 해서 옥석을 가리지 않고 폐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발전도 아닐 것입니다. 연간 이용자 수가 3억 7천만여명에 달하고 국민의 교육과 문화의 중추기관인 도서관의 발전을 위해 어떤 길이 현명한 것인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새정부를 준비하는 인수위원회는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의 폐지’를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할 것이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현명한 재고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의원님의 혜안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어떤 방법이 올바른지를 살펴, 도서관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부디 대한민국의 발전과 도서관의 발전을 위해 심어놓은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라는 싹이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말라죽게 버려두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한국은 총 인구 4,899만여명 중 17만 4천여명이 564개의 공공도서관을 이용, 1개의 공공도서관 봉사대상 인구가 8만 6,865명(2006년기준)으로 OECD국가 중 최하위이며, 1위인 스페인 8,040명(2002년)의 10.6배, 독일의 9,497명(2002년)의 9.6배, 핀란드 1만 1,998(2002년)의 7.3배에 가까울 정도로 공공도서관의 수가 부족하며, 장서수도 4,924만여권으로 1인당 장서수가 1.01권에 그쳐 핀란드 7.24권(2002년)에 비해 7분의 1, 덴마크 4.98권의 5분의 1, 미국 3.0권(2004년)의 3분의 1가량에 불과함.